서유럽에선 악마와 내통하는 마녀에 대한 이론이 등장했다. 마녀사냥이 일어난 것은 중세 시대가 아닌 16세기, 17세기에 있었던 일이다. 중세 전성기부터 후기까지 여성이 처한 상황을 쓴 책에서는 이교적 의미의 마술과 남에게 악을 끼치는 마법적 사술을 사용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1426년에 악마론 대전이라고 할 "마녀의 망치"가 쓰인 후로 마녀 사냥꾼들이 생기고 200년 동안 자신들의 근거로 삼은 자료가 됐다.
주교법이란 텍스트에선 앙키라 공의회에서 제정된 것으로 9세기 처음 등장하지만 기원은 추측일 뿐이다. 이것은 11세기 고해사를 쓴 지침서에 참고되었다. 이 텍스트는 마술을 신봉하는 자는 누구나 이교 신앙으로 사탄을 만들어낸 미망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자 같으며 이교 신앙을 고집하는 자는 마녀를 숭배하는 자와 같다고 했다. 마술은 실제가 아니면 마귀들은 실제 하지만 인간은 그들의 도움 없이는 주술을 행할 수 없고 상상에 불과하다고 했다. 주술사와 악마 숭배사를 동일시하는 것이 그리스도교식 해석이고 마녀들이 마귀 숭배자거나 마귀와 한편이라고 믿었다는 말은 없었다. 주교법에 따르면 마술을 시도하거나 행한 죄는 2년 동안 참회하는 것인데 행위 자체에 대한 참회가 아니라 마술을 행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는 신념에 대한 참회였다. 14세기 이전에도 마술의 실제성을 믿는 성직자도 있었던 반면 지식 있는 성직자들은 지배적인 입장에서 마술은 전면 거부했다.
주술을 행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에게는 집단적이고 가혹한 즉결 심판이 행해졌고 교회는 그런 박해를 장려하지는 않았다. 이단 재판 법정을 열어 이단을 척결했던 것과는 반대로 교회에서는 마녀에 대한 재판을 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을 주술 혐의로 고발은 했으나 입증하지 못한 사람은 처벌받게 돼 있었다. 실제로 주술을 행한 것으로 밝혀진 자들은 교회 법정이 부과하는 벌로 참회에 그쳤고 최악의 경우라 해도 추방하는 정도였다. 주술 혐의를 받은 자들은 대중의 혐오와 분노에서 보호해주려고 애쓴 성직자들도 있었다.
13세기 이후로 악마에 관한 관념들이 눈에 띄게 성장했고 그 문제에 관한 이론은 거의 프란체스코회와 도미니코회의 학교에서 발전했다. 이때 교회는 주술에 관여한 자들에 대한 태도가 변하기 시작한 때이다. 교회는 마녀를 악마 숭배자로 보기 시작했고, 악마의 공모자라고도 했으며 마술의 실제성을 믿기 시작했다. 주술을 악마와 공모로 보는 견해는 성직자들의 의견이었고 이단들이 악마와 거래한다는 고발에서 생겨난 것일 수도 있다고 한다. 천문학, 점성학, 연금술 등을 연구한 학자들이 주술사의 뜻대로 악마를 부릴 수 있는지 종종 실험도 했다. 그리고 이런 연구를 하는 자들은 악마와 계약을 맺은 이유가 아니라 악마를 불렀다는 이유로 고발당했다. 교회만이 악마들에게 대항하여 행동할 수 있었는데 이런 주술사들은 그들이 악마를 불러내 자신을 섬기도록 부렸다는 기록도 있다. 성직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들을 불러내어 일을 시킨다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들과 거래한다는 것 자체가 죄로 간주하였다.
이단에 관해 말하자면 12세기 초 서유럽의 몇몇 이단파들은 악마와 공모하는 주술에 관여했다고 믿어졌다. 가톨릭 정통 신앙에서 탈선한 이단교는 악마를 숭배한다고 했다. 그러나 13세기 동안 주술의 시행이나 악마와의 계약은 규정되지 않았다. 교황 알렉산더 4세는 이단 색출에 전념하라고 했다. 주술 관여한 사람 중에 이단에 넘어간 자들은 재판에 불렸다. 일반적으로 주술 때문에 고발당한 사람들은 해악을 초래한 경우만 고발되었다.
남녀 마녀에 대한 전형이 만들어진 것은 15세기 일이었다. 이때 "마녀의 망치"라는 책이 나왔고 이 책에서 마녀란 악마와 내통하여 그리스도와 세례와 성사를 부인하는 자로 정의되었다. 마녀가 세례를 받았을 경우 그리스도교 이단이 됐다. 마녀들은 모여 악마를 숭배하고 수행하고 아동 살해와 식인 행위 등 잔혹한 잔치를 벌였다. 마녀는 개별적으로 행동했지만 마녀 사회의 일원이다. "마녀의 망치"에선 악마들은 자기 뜻을 직접 행할 수 있지만 마녀를 중개자로 하는 편을 선호한다고 쓰여있다고 한다. 신의 피조물들이 악을 행하는 것이 신을 모욕하는 것이라 악마는 그렇게 신을 모욕하는 것이라고도 쓰여있다. 마녀는 인간과 가축과 작물에도 피해를 주었다.
위의 내용같이 서유럽 그리스도교 세계에 형성된 마녀 이론의 특징이다. 악행과 악마숭배를 동일시한 것이다.
마술을 행하는 것이 일종의 이단으로 규정되면서 마술을 행하는 자들에 대한 박해는 심문제도로 바뀌었다. 더 이상 고발자가 피고의 죄를 입증할 필요가 없어지고 피고가 자신의 무죄함을 증명해야 했다. 그것은 고발자와 피고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자기 방어와 관련된 문제였기 때문이다. 마술을 행했다고 고발된 사람을 재판할 때 이단 재판 법정의 방법을 채택했다.
중세에는 실제로 주술에 관여한 이들이 있었고 그들은 마법을 써서 병을 고치고 다양한 약을 만들었고 밀랍 인형을 만들어 바늘을 찔러 희생자를 만들기도 했다. 마법과 그 힘은 민간 신앙에 널리 퍼졌고 그리스도교는 이것을 완전히 근절하지 못했다. 그들은 사탄과의 계약이라는 개념을 발전시킴으로 마술에 대한 해석을 신학적 해석으로 바꾸었다. 즉 주술은 악마의 일이요, 악마는 신이 존재하도록 허락한 것이므로 주술은 실제적인 것이 되었다.
교회도 나름의 공인된 마법을 가지고 있었다. 사제가 축성된 성체를 가지고 다니면서 축복을 한다는 것 등의 기록을 말하는 것이다.
15세기 후반 악마와의 공모라는 혐의로 고발당한 사례가 많아지면서 여성 피고인들의 비율이 늘어났다. 여성이 주술을 행한 죄로 고발당하는 일은 남성이 지배하는 다른 사회에서도 일어났다. 1300년~1500년대 유럽에서는 대부분은 결혼한 여성들인데 어떤 여성은 마법적 치유를 행했고 약초를 다루는데 능했으며 어떤 여성은 치유자였다. 어떤 여성들은 창녀였다. 성적으로 문란하다고 알려진 여성들은 마녀로 고발당하기 쉬웠으며 다른 여자와 결혼한 전 애인으로부터 마녀로 고발당하는 여성들도 있었다. 사이가 나쁘거나 실제로 말다툼을 한 남녀 이웃으로부터 고발당하기도 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마술을 썼다고 고발당하는 이들도 많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대가를 받고 마술을 행했다고 고발당하는 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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