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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시대 여성의 모습

중세 시대 인물 엘로이즈 첫번째 이야기

by 정유이레 2022.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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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시대는 남녀 모두 위계질서 안에 있었고 이 질서 안에서 남녀가 상하 관계로 이루었다. 이 시대엔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견해가 일반적이었고 여성에 대한 부정적 관점이 금욕주의적 태도와 연관시켰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성적인 욕망은 극복해야 할 것이라 여긴 것을 비롯해 초기 그리스도교애서는 여성은 성적 유혹자이며 남성을 타락게 하는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여성은 약하고 열등하면서 남성을 타락시켜버리는 위험한 존재로 취급하면서도 서양 중세에 성모 마리아를 숭배하기 시작하는 이중적 모습을 보이게 된다.  

그러나 서양 중세 시대 동안 양성의 사회적 관계가 조금은 변하고 있었다. 성에 관련된 시선과 태도 등은 시대별로 명확한 변화는 있었다. 중세 초기는 암흑시대라는 단어로 표현될 만큼 경직되고 폭력적이고 거칠어 남녀 간의 애정에 관한 글이나 표현을 찾아보긴 어렵지만 중세 전성기로 들어오면서 남녀 간의 사랑과 표현은 새롭게 표현되어 이 시기에 사랑에 대해 여성 주체의 출현이 빈번했다. 사랑에 정열적인 여성의 모습으로 결혼제도에 구애받지 않고 젊은 남성과 혼외의 사랑을 능동적으로 나누는 대담한 여인의 이야기나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 젊은 아가씨가 유혹하는 자태로 젊은 남성의 설레는 마음을 노래한 시집 등이 있었다. 

세속 문학뿐 아니라 종교적 인물들의 신앙 고백을 남녀 간의 강렬한 사랑으로 세속 문학과 같은 표현으로 쓴 글들이 많은데 수녀들이 쓴 글이거나 수녀에 관해 쓴 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글이다. 후대 세속 연구자들은 이런 글들을 보고 어떤 부분을 종교적으로 해석해야 할지 어떤 부분을 에로스로 봐야 할지 난감해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 시대 엘로이즈의 사랑 얘기는 관념을 넘어서는데 언급되어야 하는 소재를 갖고 있다.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편지는 당대 최고의 학자였던 아벨라르의 비극적 운명에 회자했지만 여성인 엘로이즈가 보여준 용기와 정열은 시대를 넘어 감동을 주고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엘로이즈 또한 시대의 희생이 되어 사랑에 실패한 여인으로 보고 있지만 그녀의 결단력과 사랑과 결혼의 문제에 대한 생각은 도덕적 테두리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두 사람의 편지는 여러 평가가 계속되어 왔다. 19세기 초부터 진위 논란이 있었으며 20세기까지 계속되었다. 둘의 편지가 위조되었거나 엘로이즈가 썼다고 주장하는 편지의 일부는 엘로이즈는 수녀였기에 편지 내용의 파격적이고 대담한 욕망 표현을 썼을 리 없다고 아벨라르가 쓴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기도 했다. 수녀이기 때문에 그 틀에서 벗어나는 생각이나 행동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주장하는 것이 연구자들의 자기상을 투여한 것일 수도 있지만 사람은 외적 규제와 규율을 넘어 자유 의지를 갖고 있다. 이 시기엔 여성의 글쓰기가 활발힐 때이며 위에서 언급한 듯이 세속적 글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렬한 신앙 고백의 글도 있는 경우가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자. 따라서 이 편지들이 가짜라는 증거가 없는 한 이 편지의 내용을 신뢰한다면 엘로이즈의 모습은 중세에 살았던 여인의 생생한 모습으로 볼 수 있는 가치가 있는 것이다.

 

아벨라르는 퍼라 학계의 최고 명성을 얻고 있던 철학자였다. 파리 대학에서 강의하며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많아 명성도 있었으며 격정적인 성격이었다. 그는 반면에 여성과의 기록은 별로 없었으나 자신의 매력에 대한 자신감은 넘쳤다고 한다. 마흔이 다 되어서야 쾌락을 누리고 싶었고 학문에서 충분히 성취감을 취한 그는 학식이 뛰어난 젊은 여자를 찾았다. 아벨라르는 젊은 여성이면서도 학식이 뛰어나고 재색까지 겸비한 엘로이즈의 소문을 듣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부친과 출생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아벨라르와 만날 땐 어머니의 남자 형제인 퓔베르의 집에 살고 있었는데 그가 엘로이즈의 교육에 모든 정성을 쏟은 것을 근거로 혼외 관계에서 낳은 딸이라는 추측도 있었다. 하지만 이때는 친척들이 부모 못지않은 보호자 역할 또는 대리자 역할을 많이 했다는 증거 기록들이 있다. 엘로이즈는 똑똑한 여성이었다는 것은 클뤼니 수도원 원장의 기록에도 있다. 아벨라르는 엘로이즈에게 접근하기 위해 퓔베르에게 하숙인으로 받아달라고 제안해 허락받았으며 퓔베르는 아벨라르가 하숙하게 되자 엘로이즈의 교육을 일임했다. 아벨라르가 노리던 것이었다. 학문에만 관심 있던 두 사람은 곧 사랑에 빠지게 되고 아벨라르는 다소 무책임하게 엘로이즈에게 접근했다가 스스로 억제할 수 없는 열정에 휩싸이며 당황하다 결국 비극을 자초했다.

아벨라르가 사랑하느라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 소홀해지고 엘로이즈는 임신까지 하게 됐으며 이 사태가 소문이 나자 그는 자기 고향 누이의 집에 그녀를 피신시키고 아들을 낳은 후 퓔베르에게 찾아가 사죄하며 결혼하고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명성과 미래를 더 걱정했고 퓔베르가 사실상 집안을 지휘했으니 엘로이즈가 원하는 것보다 퓔베르에게 기대 이상의 보상을 해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벨라르는 자기 명성을 위해 비밀 결혼을 제안했다. 학자로서 충분한 명성을 쌓았지만 그가 재직하던 학교에선 기혼자가 없었다. 그는 공개적 결혼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엘로이즈의 가족에게 보상하려면 비밀 결혼을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지만 엘로이즈는 처음부터 결혼을 반대했다. 아벨라르의 집요한 설득에 그의 뜻을 따라 아이를 낳았고 그들의 결혼은 비밀로 진행했지만 퓔베르가 둘의 스캔들을 잠재우기 위해 결혼을 공개했다. 그는 오직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아벨라르가 이에 항의하자 퓔베르는 그녀를 학대하기 시작했고 아벨라르가 그녀를 수녀원으로 피신시키자 퓔베르와의 오해는 풀리지 않은 채 더 악화하였다. 퓔베르는 아벨라르가 마음이 변해 엘로이즈를 수녀로 만들고 다른 여자와 다시 결혼하려고 한다는 의심이 들었다. 퓔베르는 사람을 고용해 한밤중 잠들어 있는 아벨라르를 습격해 성기를 절단해 버렸다. 그는 남성성을 다시는 회복할 수 없었고 수도원으로 도망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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